신자유주의의 대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의 황금기를 ㄹ누리던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자본주의 국가들이 197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각국에서는 정부 재정 적자 증가, 실업률 증가, 제조업 둔화, 물가 상승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은 세계 각국의 경제 성장률 하락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러한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가 대두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 침체가 발생한 원인을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자유로운 경제 활동과 자본의 흐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 활동에 대한 정부 역할과 규제를 축소하고 민간 부문과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여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영구고가 미국에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
신자유주의는 곧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자유화되면서 자본주의가 확산되고,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자 신자유주의는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세계 각국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도입하였습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도 경제난을 겪으면서 재정 긴축, 규제 완화, 민영화, 외국인 투자 촉진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습니다.
산업화가 덜 이루어진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도 세계은행과 국제 통화 기금의 원조 제공과 함께 무역 자유화, 국영 기업 민영화, 긴축 재정 등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를 요구받았습니다.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프랑스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우파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영 기업 민영화, 복지 축소, 연금 개혁, 실업 해소 등의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일본 등 국가 주도하에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던 동아시아 국가들도 신자유주의를 도입하였습니다.
세계 무역 기구[WTO]의 성립과 활동
신자유주의와 함께 국제 경제에서 세계화 추세가 나타나 자본과 상품, 노동 등의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이동이 확대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에 의해 자유 무역이 꾸준히 확대되어 왔지만, 여전히 수입 제한, 농산물 보조금 제도 등 많은 예외 규정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과는 다른 규정이 적용되는 산업 분야별 무역 기구와 질서들이 따로 존재하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경기 침체로 인해 보호 무역주의가 다시 확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자유 무역을 ㅂ아해하는 각종 예외 조치를 축소하고 세계 무역 질서를 하나로 통합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습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회원국을 중심으로 1986년부터 새로운 국제 교역 질서를 만들기 위해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국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세계 시장 개방 확대를 목표로 하여 농산물 교역, 관세, 섬유 산업, 철강, 서비스, 해운업, 지적 재산권, 교역 분쟁 처리, 보조금, 통합적인 무역 기구 창설 등의 문제가 논의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5년 세계 무역 기구가 출범하여 세계 무역 질서를 이끌기 시작하였습니다. 1995년 1월 1일 세계 무역 기구 설립 협정이 발효될 당시에는 76개 회원국으로 시작하여 꾸준히 회원국 수가 증가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중국과 타이완, 2005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2011년에는 러시아가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이후 160여 개의 정식 회원국이 세계 무역 기구에 참여하였습니다.
자유화와 지역화 추세
세계 무역 기구는 모든 회원국을 하나의 자유 무역 시장으로 통합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경제 구조와 발전 정도가 다양한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와 특수한 사정이 반영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대 접어들면서 개별 국가나 지역 경제 공동체 간의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이 활발해졌습니다.
자유 무역 협정은 각국의 경제적 상황과 지역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두 나라 간에 체결하기도 하였고, 여러 나라가 참여하여 지역 경제 공동체를 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협정 국가들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세 등 무역 장벽을 폐지하거나 낮추고, 특혜를 부여하여 교역을 증진하되, 협정국이 아닌 국가에 대해서는 세계 무역 기구에서 허용한 제한을 유지하는 등 차별을 두어 공동 이익을 추구하였습니다.
또, 유럽,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아시아와 태평양,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에서 지역별로 경제 권역을 형성하는 통합이 추진되었습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북아메리카 3개국은 1992년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을 체결하고, 1994년부터 정식으로 발효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거대한 단일 시장을 탄생시키고 상품과 서비스 등의 이동에 대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폐지하여 나갔습니다. 이러한 지역 경제 공동체는 내부적으로는 자유 무역을 추구하고, 대외적으로는 보호 무역주의를 택하여 회원국의 공동 이익을 확대하였습니다.
세계화의 확산
세계 무역 장벽의 완화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력, 정보 등이 대규모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경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과 금융 회사들이 증가하였고, 생산 활동이나 수출입에 유리한 곳을 찾아 해외에 공장을 건설하거나 이전한 기업도 늘어났습니다. 다국적 기업들도 해외 투자 및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였으며, 저렴한 비용으로 노동력을 활용하고, 수출 시장을 확대하여 이윤을 증대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과 기술, 설비 등이 부족한 개발 도상 국가들은 선진국의 기업과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성장의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외국 기업의 투자를 ㅌ오해 자국의 산업 개발을 도모하고, 일자리를 늘려 실업을 해소할 수 있었으며, 선진적인 경영 기법과 우수한 생산 기술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의 개선과 함께 사람들의 소득 증가와 생활 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인도 등을 비롯한 국가에서 세계 절대 빈곤층의 비율도 감소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문제점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나타났습니다. 미국,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추진되면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었습니다. 전체적인 평균 임금은 상승하였지만 산업별, 직업별, 노동자의 지위별 차이에 따른 노동 조건과 임금 격차가 커졌고, 생산직과 비생산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지위도 약화되었습니다. 기업들의 해외 이주와 공산품 수입 증가 등으로 인하여 일자리가 줄어들었습니다. 노동 시장 유연화에 따라 노동 임금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고 정리 해고가 용이해졌습니다.
개발 도상국들에서도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습니다. 산업과 자원 개발의 명목으로 환경이 파괴되었고, 노동자들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투자와 개발의 이익이 다국적 기업의 본사로 귀속되어 실질적인 경제 성장의 효과를 얻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개별 국가들의 주권과 자율성이 약화되었습니다. 무역 장벽 해소, 자유로운 투자 환경 조성이 강조되어 자국의 환경, 노동자들의 권익, 취약한 산업 분야 등을 보호하는 각국 정부의 기능이 위축되었으며, 복지 정책과 공공 서비스도 축소되어 사회 불평등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의 전개
세계화의 확대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화되자 반세계화 움직임도 커졌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활동 기준이 세계의 표준이 될 것이며, 결국 경제적 효율성만이 강조되고 자유, 사회 정의, 평등의 가치가 위축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확산되었습니다.
국제 통화 기금이나 세계은행의 정기 회의를 비롯한 주요 국제회의가 열린 도시에서는 그 기간에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던 세계 무역 기구 각료 회의는 노동 운동 단체, 환경 운동 단체 등 여러 비정부 기구가 일으킨 격렬한 반대 시위로 회의가 무산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화와 시장 개방 등으로 피해를 입게 된 각국의 농민 운동 단체와 노동 운동 단체들도 반세계화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브라질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인, 시민 운동가, 노동 운동가, 학자 등 다양한 사회 운동가들이 참여한 반세계화 회의로 세계 사회 포럼이 처음 개최되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획일적인 세계화에 반대하였습니다. 이후 세계 사회 포럼은 매년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었으며, 부의 공정한 분배, 빈곤 퇴치, 환경 파괴 금지, 민주주의 개혁, 투기 자본 규제 등 다양한 주제들을 논의하였습니다.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들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협력적인 방식의 경제 성장을 권고하였습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한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측면을 간과하는 것에 비판을 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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