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 국가의 등장 배경
유럽 사회는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그리고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빠르게 변화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혁과 더불어 16세기경부터는 국왕을 중심으로 통일 국가를 형성하고 적극적인 해외 팽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절대주의 국가 시대 또는 절대 왕정 시대라고 부릅니다. 절대 왕정이란 왕이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은 채 전권을 행사하면서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절대주의 국가는 중세 봉건 국가에서 근대 국민 국가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등장한 정치 형태로, 봉건 귀족과 신흥 상인 계층의 대립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주의 국가 시대의 유럽의 군주들은 끊임없는 국내의 반란과 국외의 전쟁에 직면하였으므로 군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 각국의 정부는 군사 행정 체계를 마련하였습니다. 군주들은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이거나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정 기구가 확대되면서 전통적인 법관직 외에 재무 관직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또, 서류 작업이 일상화되고 행정 조직이 체계화되었습니다.
절대주의 국가의 기반
절대 군주는 왕권을 강화하고 전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관료제와 상비군을 운영하였습니다. 관료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였는데, 이를 위한 재정은 조세 징수와 시민 계급의 재정 지원으로 해결하였습니다. 시민 계급은 봉건 귀족과 대립하며 자신들의 세력 확대를 위해 국왕과 협력하였고, 특히 상공업과 대외 무역에서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국왕을 지원하였습니다. 국왕 또한 국가의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 계급의 상공업 활동을 지원하였습니다.
각국의 절대 군주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팽창과 식민지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며, 국가 간의 왕위 계승 문제나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빈번히 전쟁을 벌였습니다. 절대 왕정 시기에는 왕권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사상으로 왕권신수설이 유행하였습니다. 왕권신수설에서는 왕권을 신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여기며, 지상의 어떤 것도 왕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중상주의 정책 실시
절대 왕정은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그 성과를 통해 국가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생산 영역의 규모가 충분히 크지 않아서 생산보다는 상업과 무역 활동이 국가의 부를 증진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각국 정부는 이웃 국가보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내 시장을 보호하면서 국외 시장 판매를 확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절대 왕정은 수출세를 낮추거나 폐지하고, 수출 장려금을 지급하여 수출을 적극 장려하며, 반대로 수입을 금지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였습니다. 또, 수출 확대와 수입 억제의 기본이 되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국외 시장 확대를 위한 식민지 건설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서유럽 절대주의 국가의 발전
에스파냐는 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귀금속을 바탕으로 신대륙과 지중해, 네덜란드 등을 식민지로 거느린 대제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펠리페 2세는 레판토 해전(1571)에서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였고, 포르투갈을 병합하고 왕을 겸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강요 정책에 반발한 네덜란드가 독립하고,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면서 16세기말부터 국력이 급속이 쇠퇴하였습니다.
영국은 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러 모직물 공업을 육성하고,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하였으며, 동인도 회사를 세워 아시아로 진출하였습니다(1600).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 때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여 절대 왕정을 확립하였습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고 말할 정도로 왕권신수설을 철저히 신봉하였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궁정 문화를 꽃피우고 '태양왕'을 자처하였습니다. 또, 재무 장관으로 콜베르를 등용하여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낭트 칙령을 폐지하여 상공업에 종사하던 많은 위그노가 프랑스를 떠나면서 국내 산업이 침체되었고, 무리한 전쟁을 거듭하여 국력을 낭비함으로써 이후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에 성공한 뒤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아시아 방면으로 진출하였고, 아메리카 대륙에도 진출하여 중개 무역으로 번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7세기 초반에 네덜란드는 전체 유럽 상선의 4분의 3을 가진 유럽 최대의 해운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동유럽 절대주의 국가의 발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끝에 슐레지엔 지방을 차지하였고,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국가 제일의 공복'이라고 하며 산업을 장려하고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쳤습니다. 한편, 오스트리아에서는 프로이센에 슐레지엔을 빼앗긴 뒤 요제프 2세가 계몽 전제 군주임을 내세우며 내정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나, 17세기 말 표트르 대제 시기에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서유럽의 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표트르 대제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선진 문화와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내정을 개혁하였습니다. 또한 스웨덴과의 북방 전쟁을 통해 발트 해로 진출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 지역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도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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