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시작
14세기경 교회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유럽인들은 인간의 개성과 합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러한 움직임을 르네상스라고 합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피해 넘어온 비잔티움 학자들은 그리스 로마 고전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였으며, 무역 과정에서 형성된 이탈리아인의 합리적인 탐구 정신과 물질적인 부는 학자와 예술가를 뒷받침하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인문주의가 형성되었으며, 교회의 권위를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을 그대로 묘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인문주의가 형성되었으며, 교회의 권위를 넘어서서 자연과 인간을 그대로 묘사하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이후에는 북유럽으로 르네상스가 확산되었습니다. 북유럽에는 교회의 권위와 봉건 사회의 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북유럽의 인문주의자들은 초기 크리스트교 연구를 통해 현실 사회와 교회를 비판하는 개혁적 성향을 보여 주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전개
인문주의의 인간 중심 사고와 합리적인 세계관은 신앙의 참다운 의미를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북유럽에서 인문주의는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종교 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독일의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면서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교황과 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루터의 주장을 탄압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를 지지하는 제후들이 이에 맞서 저항하였으며, 결국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체결되어 제후들에게 종교 선택권이 주어짐으로써 일부 지역에서 루터파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스위스의 칼뱅은 인간의 구원이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예정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칼뱅의 예정설이 최후의 심판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수용되면서 생업에 종사하고 열심히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것이 선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에서는 국왕 주도의 종교 개혁으로 영국 국교회가 성립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혁으로 교황 중심의 종교적 통일이 무너지고, 유럽 대륙은 구교도 진영과 신교도 진영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종교 전쟁의 발발
종교 개혁이 확산되면서 치열해진 신교와 구교의 대립은 종교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네덜란드의 신교는 구교 국가인 에스파냐의 지배에 맞서 싸웠으며,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이 일어났고, 독일의 종교 전쟁은 30년 전쟁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결국, 30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칼뱅파에게도 종교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한편, 신교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가톨릭교회 내부의 개혁도 전개되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황의 권위와 교리를 재확인하였고, 신교의 확산을 막기 위해 종교 재판소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파냐의 로욜라는 예수회를 설립하여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 대한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세계적 교역망의 형성
동아시아 삼국은 모두 대외 무역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무역만을 허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명과 청에서는 광저우를 비롯한 남중국해에서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조선에서도 명, 청이나 일본과 꾸준히 무역이 이루어졌으며, 일본도 나가사키항을 통해 네덜란드 상인과 교역을 하였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이슬람 상인이나 유럽 상인이 중국으로 향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해상 무역의 거점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지역의 마자파힛 왕조, 말레이시아 지역의 믈라카 왕국, 그리고 류큐 왕국 등이 교역으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신항로 개척 이전에 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역할은 주로 이슬람 상인들이 담당하였습니다. 16세기경 무굴 제국, 사파비 왕조, 오스만 제국 등이 발전함에 따라 이슬람 상인들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무굴 제국에서는 주로 직물, 인디고, 초석, 향신료 등이 수출되었고, 은 등의 귀금속이 수입되었습니다. 이란 지역의 사파비 왕조는 비단과 양탄자로 유명하였습니다. 페르시아(아라비아)만 입구의 호르무즈는 사파비 왕조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자 국제 교역항으로 번성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무역을 통해 동서 무역을 독점하였으며,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은 향신료, 비단, 커피 등이 교역되는 국제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가격 혁명과 상업 혁명의 발생
신항로 개척 이후 유럽 상인들은 인도양 교역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지만, 많은 이익을 남기기는 어려웠습니다. 인도양과 동아시아의 교역망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이슬람 상인과 중국 상인들이 터전을 다져 온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럽 상인들의 참여로 세계의 교역망은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하였고, 아메리카의 은이 교역망 통합의 매개체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메리카의 은이 유럽에 유입되면서 물가가 폭등하는 가격 혁명이 일어났고, 유럽 상인들이 은을 무기로 아시아 상인들과 경쟁하면서 직물, 향신료, 차, 비단, 도자기 등의 거래를 통해 상업 혁명이 전개되었습니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인도의 고아나 말레이 반도의 믈라카 왕국을 무역 거점으로 장악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무역을 전개하여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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